본문 바로가기
독서

숨겨진 명작 리뷰 |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by 50분전 발행됨 2025. 4. 3.

- 도시는 인간의 마음을 닮는다, 혹은 반대로 -


줄거리 요약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줄거리보다는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마르코 폴로가 황제 쿠블라이 칸에게 자신이 여행하며 본 도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도시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가 아니다. 각각의 도시는 환상과 철학,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허구의 공간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도시 하나하나에 여성의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기억, 욕망, 시간, 죽음, 언어, 욕심 같은 주제를 녹여낸다.

책은 총 55개의 도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이 도시들은 ‘기억의 도시’, ‘욕망의 도시’, ‘죽음의 도시’ 등 11개의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다. 예컨대 ‘조라’라는 도시는 너무나도 질서정연해 외워버릴 수밖에 없는 공간이고, ‘디오메이라’는 끊임없이 재건되지만 언제나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도시다. 각 도시는 하나의 은유이며, 실제 도시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 구조 혹은 사회 구조를 형상화한 추상적 존재에 가깝다. 현실 속 공간에 구체성을 부여하던 기존 소설과 달리,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오히려 ‘진짜’ 도시를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구조는 독자에게 도시를 넘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통찰을 끌어내도록 유도한다.


 

실생활 적용 전략: 현실 속 도시 읽기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우리가 사는 도시, 나아가 우리의 삶 자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책 속 도시는 허구이지만,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도시’에 산다. 이때의 도시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체성의 공간, 감정의 공간, 기억의 공간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당신은 어떤 도시에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우선, 도시를 ‘사람의 집합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도시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직장이라는 도시, 가정이라는 도시,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들은 어떤 분위기를 갖고 있는가? 고립되어 있는가, 소통이 흐르는가? 칼비노는 이런 도시의 특성을 ‘은유’로 표현했지만, 우리는 이를 실제 삶에 적용해 ‘나의 정서적 도시 상태’를 진단해 볼 수 있다.

또한 칼비노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도시’는 인간이 잃어버린 가치들—기억, 공감, 느림, 깊이—를 상징한다. 현대의 도시들은 효율과 속도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정체성과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도시의 외형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지금 나의 도시(삶)는 나를 숨 막히게 하는가, 아니면 나를 숨 쉬게 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삶의 공간을 재정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칼비노의 시선처럼 ‘도시를 감성적으로 관찰하는 연습’을 제안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자주 가는 골목의 낙서, 지나치는 간판 속 단어들—이 모든 것이 우리의 도시를 풍요롭게 만든다. 도시를 해석하는 능력은 결국 삶을 해석하는 능력이다. 이 책은 그것을 훈련하는 일종의 감성 지도학이다.

 


숨겨진 명작 리뷰 ❘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이미지=ChatGPT


인물 심리와 사회 구조의 해부

작품의 형식적 장치는 마르코 폴로와 쿠블라이 칸의 대화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고전적인 인물로 기능하기보다는, 사유의 메타포로 읽힌다. 마르코 폴로는 여행자, 즉 ‘경험을 통해 세계를 관찰하는 자’로서 등장하고, 쿠블라이 칸은 ‘통치자’, 즉 질서와 통제를 중시하는 존재로 설정된다. 이 둘의 대화는 인간 존재의 이원적 갈등 구조를 드러낸다. 감성과 이성, 자유와 통제, 유동성과 고정성 같은 이분법적 주제가 이 둘을 통해 펼쳐진다.

도시들을 바라보는 마르코 폴로의 시선은 매우 시적이며,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다. 반면, 쿠블라이 칸은 각 도시의 실질적 정보—경제, 인구, 구조—를 원하며, 모든 것을 체계화하려 한다. 이러한 대비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도시를 인식하는 두 가지 방식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도시는 통계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라 불릴 수 있지만, 실제 주민에게는 소외와 고립, 정체성 상실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도시를 단순히 공간이 아닌 ‘의미화된 감정의 장소’로 인식한다. 칼비노는 도시를 통해 인간 심리의 다양한 결을 표현하고, 각 도시마다 인간 존재의 한 측면을 투영시킨다.

현대인의 심리도 이 도시들과 닮았다. 늘 기억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기억의 도시’에, 욕망이 과잉되어 삶의 중심을 잃은 사람은 ‘욕망의 도시’에,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기력해진 사람은 ‘죽음의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도시를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거주지’로 읽는 철학적 접근이며, 인간이 공간과 맺는 관계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마무리 감상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여행기를 가장한 철학 에세이이자, 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 존재 탐구서다. 칼비노는 도시라는 추상적 구조를 통해 인간의 내면, 사회의 양면성, 기억과 시간의 흐름 등을 포착한다. 이 작품은 정답을 주기보다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도시에 사는가? 우리는 어떤 도시를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 도시 속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현대 사회는 눈에 보이는 것, 즉 수치와 결과에 몰두하는 시대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감정, 기억, 상상, 관계—이런 것들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실의 도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나만의 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칼비노는 그 도시를 ‘의미로 채우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문학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묻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도시는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