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숨겨진 명작 리뷰 | 《방랑자들》 – 올가 토카르추크

by 50분전 발행됨 2025. 4. 5.

숨겨진 명작 리뷰 | 《방랑자들》 – 올가 토카르추크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흘러 다니는 것이다-


이미지=챗GPT

줄거리 요약

《방랑자들》은 전통적인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수많은 파편적인 이야기와 에세이, 여행기, 철학적 사유, 해부학적 설명이 얽혀 있는 실험적인 형태로 구성된다. 주인공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간'에 대한 관찰과 사유로 일관된다. 익명의 화자는 전 세계를 떠돌며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관찰한다. 한 아이가 어머니와 공항에서 사라지고, 어느 남자는 자신의 다리가 해부학 전시품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추적하며, 또 다른 여성은 발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고립감을 느낀다.

이 모든 조각들은 ‘여행’ 혹은 ‘이동’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중심으로 모인다. 토카르추크는 물리적 공간의 이동뿐 아니라, 정체성, 기억, 역사, 신체, 감정의 이동까지 포괄하는 ‘방랑’을 말한다. 《방랑자들》의 세계는 경계가 없는 흐름 속에서 구성되며, 한 인간의 이야기에서 다른 인간의 이야기로, 한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넘어간다. 독자는 전통적 플롯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대신 ‘이동’ 그 자체에서 의미를 포착하게 된다. 책 전체가 하나의 '사유의 지도'처럼 읽히며, 우리는 읽는 내내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물 심리와 사회 구조의 해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체성이 고정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이동하고, 흩어지고, 연결되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새로 정의한다. 이는 현대인의 심리와 정확히 맞물린다. 과거에는 출신지, 직업, 가족이 정체성을 결정했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그런 고정된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SNS 속 다중적 자아, 업무와 취미, 현실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우리는 고정된 ‘나’보다는 ‘변화하는 나’에 더 가깝다.

책 속 인물들은 ‘뿌리 내림’보다 ‘움직임’에서 자아를 찾는다. 이는 ‘정착’이 미덕처럼 여겨졌던 기존의 삶에 대한 도전이다. 예를 들어, 발의 통증으로 이동을 멈춘 여인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 이상의 것을 겪는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곧바로 존재의 불안에 빠지고,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느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속도’와 ‘유동성’을 상실했을 때 개인이 느끼는 소외와 상실감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구조 역시 이 책에서 중요한 테마다. 국경, 제도, 신체, 언어는 모두 이동을 제한하거나 유도하는 장치들이다. 토카르추크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지만, 인물들이 그 장치들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구조의 본질을 드러낸다. ‘해부학’이라는 소재를 반복적으로 끌고 오는 이유도 인간 신체조차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결국 조각난 신체처럼 해체되기도 하고, 다시 조합되기도 한다. 정체성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이 책은 서사보다는 구조와 시선으로 말하고 있다.

실생활 적용 전략: 움직이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방랑자들》이 말하는 ‘이동’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관통하는 태도이며, 존재의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움직이는 인간’이다. 물리적으로는 출퇴근길을 오가고, 심리적으로는 기쁨과 슬픔 사이를 이동하며, 정서적으로는 애착과 거리감 사이를 왕복한다. 중요한 것은 그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이다.

첫 번째 전략은 정체성의 유연함을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역할(엄마, 직장인, 자식 등)에 나 자신을 가두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토카르추크는 말한다. 인간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이동하는 생명이다. 삶의 흐름 속에서 나를 계속 다시 쓰고, 계속 새로이 정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지금 어떤 흐름에 있는가”를 자문해 보는 방식이다.

두 번째 전략은 경계 너머로 사유 확장하기이다. 책 속 인물들은 자신의 나라, 언어, 직업, 신체의 경계를 넘나 든다. 실제 삶에서도 이는 매우 유용한 태도다. 낯선 장소로 여행을 가는 것,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것, 평소 마주치지 않던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모두가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지도를 넓히는 행위다. 결국, 방랑은 단순한 유목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기 확장이다.

마지막 전략은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법이다. 토카르추크는 몸이 해체되고, 이야기들이 단절되는 순간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완전함에 대한 강박보다, 흐름 속의 단절을 수용하고, 부서진 기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우리는 늘 연결되지 못한 감정들, 마무리되지 못한 관계들, 정의되지 않은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간다. 그 모든 것이 나라는 방랑자의 일부다.

 

마무리 감상

《방랑자들》은 읽는 방식 자체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가?” “그 이동은 당신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우리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장소와 시간, 사람을 거치며 존재를 이어간다. 이 책은 그 복잡하고 단절된 여정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연결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그 단절 자체를 ‘존재의 조건’으로 수용하게 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 이동이 방향성을 잃었을 때, 불안은 더 커진다. 토카르추크는 말한다. “방랑자여, 목적지를 묻지 마라. 길 그 자체가 너를 설명해 줄 것이다.” 이 문장은 현대 사회의 피로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강한 위로가 된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해도,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방랑자들》은 그런 삶의 방식 자체를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움직임은 존재의 증거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방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