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사랑할 수 없는 아이와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줄거리 요약
《다섯째 아이》는 1960~7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해리엇과 데이비드 부부의 이상적인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들은 당시의 급진적 분위기와 달리 보수적인 삶을 지향하며, 큰 집을 사고 많은 자녀를 낳아 함께 모여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꾼다. 실제로 네 명의 아이가 태어나며 가족은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 벤의 탄생은 모든 균형을 무너뜨린다.
벤은 태아 시절부터 비정상적으로 발달했고, 태어난 후에도 일반적인 유아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과도한 힘, 불안정한 감정,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그는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협이 된다. 어머니 해리엇은 처음엔 끝까지 돌보려 하지만, 결국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압박과 소외 속에서 점점 고립된다.
이 소설은 벤이라는 존재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 “사랑”과 “공포”, “책임”과 “도피” 사이의 복잡한 감정선을 그려낸다. 단순히 '문제아를 둔 가정'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질문하는 소설이다.
인물 심리와 사회 구조의 해부
《다섯째 아이》의 중심인물은 해리엇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이는 당시 사회의 변화 속에서 안정과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적 욕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리엇의 세계는 벤이라는 존재 하나로 급격히 흔들린다. 아이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믿어온 가치와 세계관 전체가 도전받는 것이다. 해리엇은 처음엔 모성애로 벤을 지키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과 사회는 그녀를 외면하고, 그녀 역시 자신이 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도리스 레싱이 벤을 단순히 ‘괴물’처럼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벤은 명확히 ‘다른 존재’지만, 악의로 가득 찬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와 가족이 정의한 ‘정상성’의 틀에 맞지 않는 인간형일 뿐이다. 이 점에서 소설은 현대 사회의 ‘배제 메커니즘’을 고발한다.
아이 하나가 가족 전체의 운명을 바꾼다는 설정은 현실에서도 통한다. 장애아를 둔 가족, 성격이나 기질이 극단적으로 다른 자녀를 둔 부모는 이와 유사한 심리적·사회적 압박을 겪는다. 이때 나타나는 가족 구성원들의 심리는 방어적이고 단절적이며, 때로는 가해적인 양상을 띤다. 레싱은 이 심리 구조를 모성애의 이상화 없이 매우 냉철하게,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묘사한다.
또한 이 소설은 ‘모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한다. 모성은 무조건적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실제로 모든 부모가 그 전제를 끝까지 지킬 수는 없다. 해리엇은 벤에게 책임감을 가지면서도, 그를 외면하고 싶어 하고, 실제로 버리기도 한다. 이는 여성 독자에게 특히 큰 파장을 준다.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의 무게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이 질문이 소설의 핵심에 자리한다.
실생활 적용 전략: ‘정상성’이라는 신화를 다시 보기
《다섯째 아이》는 가족 내의 위기와 비정상성, 그리고 모성의 한계를 정면으로 다룬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어떤 상황을 ‘정상’이라 간주하고, 그 외의 것은 ‘문제’ 혹은 ‘고쳐야 할 것’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단지 가정 내 문제가 아니라, 교육, 조직, 사회 전체가 가진 시선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첫 번째 실생활 전략은 정상성에 대한 기준을 재점검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에게, 혹은 타인에게 ‘평균적인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평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수 있다. 자녀의 성장 발달, 감정 표현, 사회성 등의 차이를 단지 ‘문제’로만 보지 말고, 그 차이 자체가 의미 있는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감정 거리 유지다. 해리엇은 벤에게 집착하듯 헌신하고, 그 결과 다른 자녀들과의 관계는 붕괴된다. 현실에서도 특정 가족 구성원이 위기를 겪을 때, 가족 전체가 그 안에 빨려 들어가며 관계가 왜곡되기 쉽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함께하면서도 각자의 중심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적절한 거리와 주체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다. 해리엇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면서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현실의 위기는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전문가, 학교, 공동체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선택이다. 특히 여성은 ‘모성’이라는 이상에 스스로를 묶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돌봄의 구조’를 사회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무리 감상
《다섯째 아이》는 불편한 책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우리로 하여금 진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모성은 과연 절대적인가?”,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도리스 레싱은 이 질문들에 확실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끝까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이 책은 단지 비극적인 가족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환상을 해체하고, 현실 속 관계의 복잡함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문학적 작업이다. 특히 오늘날 부모로서, 또는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이 책을 읽는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다층적이며, 그만큼 조심스럽고 깊이 다뤄져야 하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될 것이다.
《다섯째 아이》는 우리가 무심히 ‘정상’이라 부르는 세계가 얼마나 협소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틀을 넘은 존재와 마주했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차갑고도 깊게 묻는다.
이 감정적 격랑을 경험한 후, 당신은 더 이상 ‘정상’이라는 말 앞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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