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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숨겨진 명작 리뷰 | 《우리 모두 낯선 사람들》 – 바바라 코밍스

by 50분전 발행됨 2025. 4. 10.

《우리 모두 낯선 사람들》 –  바바라 코밍스


-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낯설 수 있다, 관계 속 고요한 균열에 대하여 -


이미지=챗GPT


줄거리 요약

《우리 모두 낯선 사람들》은 전후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한 가정과 그 구성원들이 겪는 심리적 거리감과 정체성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지만, 작품은 그 내부에 숨겨진 긴장과 침묵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가 얼마나 쉽게 낯설어질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아이리스. 중산층 여성으로, 평범한 남편과 함께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단조로운 일상, 반복되는 사회적 역할,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남편과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자녀와의 유대는 피상적이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진심보다는 형식적인 인사로 채워진다. 아이리스는 점점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잃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던 중, 아이리스는 예전 친구와 재회하게 되고, 그와의 만남은 그녀 안에 오랫동안 눌려있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낸다. 그 친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두 사람의 대화는 일상의 틀을 흔들며 아이리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은 큰 사건 없이도 깊은 울림을 준다. 마치 일상적인 대화 속, 침묵 속, 그 틈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서의 변화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아이리스는 자신이 가장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남편, 아이들, 친구들—모두에게서 낯섦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게조차 낯설다는 감각을 경험한다. 이 작품은 외부적 사건보다 내면의 움직임과 감정의 결절점을 밀도 높게 포착한 작품으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누구의 아내, 엄마, 친구로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점점 자기 자신과도 멀어져 간다. 《우리 모두 낯선 사람들》은 바로 그 정체성의 균열과 회복을 담은 이야기다.

 

인물 심리와 사회 구조의 해부

아이리스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마주치는 ‘역할에 갇힌 자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가정 안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가지만, 그 역할이 진짜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식한다. 말수가 줄어들고, 감정이 말라가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한 우울증이나 권태가 아니라, 정체성의 이탈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지 다시 묻고 있지만, 정작 누구에게도 그 질문을 할 수 없다.

바바라 코밍스는 이러한 아이리스의 내면을 과장이나 감정적 폭발 없이, 침착한 문장과 간결한 상황 설정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녀가 겪는 ‘소외’는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너무도 일상적인 순간에서 비롯된다. 남편이 건네는 형식적인 인사, 자녀의 무심한 반응, 친구의 지나친 자기 이야기 속에서 아이리스는 점점 고립되어 간다.

이러한 심리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전후 영국은 안정기를 맞이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 변화를 겪는 시기였다. 과거에는 전쟁 중 가족을 책임졌던 여성들이 이제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혼란과 소외를 겪었다. 아이리스는 그런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이며, 코밍스는 그녀의 내면을 통해 사회적 전환기의 불안정한 감정 풍경을 보여준다.

더불어 작품은 ‘낯섦’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낯설 수 있다는 역설, 오래된 관계일수록 감정의 거리감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현실. 《우리 모두 낯선 사람들》은 이 불편한 진실을 서정적이고도 냉정하게 포착해 낸다.

 

고립된 시대에 '관계'를 회복하는 법

《우리 모두 낯선 사람들》은 감정의 고립을 피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 어떻게 관계를 회복하고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먼저 ‘진짜 대화’를 위한 감정 인식부터 시작해야 한다.

첫 번째 전략은 ‘자기감정 일기’ 쓰기다. 하루 중 가장 불편했던 순간,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단 한 문장으로 써보는 것이다. “오늘 남편의 말에 상처받았다”처럼 감정 중심의 기록을 지속하다 보면, 자신이 관계에서 어떤 부분에 민감한지, 어디서 소외를 느끼는지 감지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가까운 관계 안에서 ‘다시 말 걸기’ 실천하기다. 코밍스의 인물들은 말을 잃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대화가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다. 말로 상처받을까 봐, 상대를 실망시킬까 봐 말을 아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관계일수록 가볍고 안전한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늘 어땠어?”, “너 요즘 기분은 어때?” 같은 질문이 관계의 온도를 바꾼다.

세 번째는 관계를 재설계할 수 있는 용기다. 꼭 관계를 끝내라는 말이 아니라, 그 관계의 ‘거리’를 조절하라는 것이다. 바바라 코밍 스는 낯설어진 관계가 무조건 파괴되는 게 아니라, 그 낯섦을 인식할 때 오히려 정직한 관계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라 말한다. 삶의 피로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감각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마무리 감상

《우리 모두 낯선 사람들》은 큰 사건 없이도 강력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지만, 조용한 균열 속에서 삶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말한다. 진짜 낯선 사람은 거리 밖에 있는 타인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멀어진 바로 그 사람,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바바라 코밍스는 이 조용한 소설을 통해,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도 낯선 존재가 되는 순간을 되짚게 한다. 낯섦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 감정을 직면하고 다시 말 걸 때, 우리는 관계와 자아를 새롭게 회복할 수 있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진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