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숨겨진 명작 리뷰 | 《은밀한 생》 – 파스칼 키냐르

by 50분전 발행됨 2025. 4. 7.

 《은밀한 생》 –  파스칼 키냐르

- 말로 표현되지 않는 세계, 그곳에 진짜 나가 있다 -

숨겨진 명작 리뷰 ❘ 《은밀한 생》 – 파스칼 키냐르

줄거리 요약

《은밀한 생》은 파스칼 키냐르 특유의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문체로,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층위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 문학적 사유와 감각적 조각들이 결합된 감성의 지도에 가깝다. 주인공 토마 마 씨는 출생 직후 어머니에게서 버림받고 수도원에 맡겨진 인물이다. 그는 생애 초반, 말이 주어지기 이전의 침묵의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 이 시절의 침묵은 단지 음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지 않은 완전한 고립이자, 내면세계의 뿌리로 작용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언어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지 못한 채 자란다. 언어 이전의 감각, 손짓, 냄새, 분위기 등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그는 점차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이 고립은 그의 내면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키냐르는 이러한 토마의 삶을 통해, 인간 존재가 말보다 앞선 감각과 정서에 의해 형성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토마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요한 장소, 익명성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그는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부를 떠도는 방랑자처럼 살아간다. 그는 언어가 닿지 않는 깊은 곳, ‘은밀한 생’에 머물며,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이 소설은 사건 중심의 이야기라기보다, 존재의 결핍, 침묵의 무게, 언어 이전의 감각들이 쌓아올린 한 인물의 생애를 시적으로 그려낸 내면의 풍경화이다. 말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진실한 생. 《은밀한 생》은 그 조용한 삶을 천천히, 깊게 들여다본다.


인물 심리와 사회 구조의 해부

토마 마씨는 겉보기에 한없이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침묵은 무감각이 아니라, 지나치게 감각적인 존재의 반응이다. 그는 말이 아니라 피부, 빛, 냄새, 음악 같은 것들로 세상을 감지한다. 이 모든 감각들은 말보다 오래된 언어이며, 토마는 그것들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세상의 진동에 예민하다.
이처럼 토마는 말이 중심이 된 사회 속에서 비정상적 존재로 간주되며, 결국 소외된다. 그러나 키냐르는 그런 토마의 존재 자체를 “문명 이전의 순수한 인간형”으로 제시한다.

이 소설은 현대 사회의 언어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사회는 ‘말하는 자’, ‘설명하는 자’, ‘소통하는 자’만을 정상적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과연 말은 진실을 전하는 유일한 수단인가? 키냐르는 말보다 더 깊은 진실이 침묵 속에 있다고 말한다.
토마는 그 침묵을 통과한 존재다. 그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자기 세계에 더욱 충실하다. 그것은 타자와의 단절이 아니라, 자기 존재와의 정직한 마주침이다.

또한, 이 작품은 출생과 모성, 버려진 아이의 트라우마를 신화적으로 다룬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에게 거부당한 존재는 언어의 세계에 입문하지 못하고, 그 이전의 기억, 즉 자궁 이전의 감각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인간 존재의 기원이 단지 출생 이후가 아니라, 훨씬 더 은밀하고 무의식적인 곳에 있다는 작가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토마는 ‘사회적 인간’이 되지 못한 인물이 아니라, 말로 포착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살아낸 인물이다.


실생활 적용 전략: 침묵 속에서 나를 만나는 법

《은밀한 생》이 주는 메시지를 현실에 적용하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말하고, 표현하고, 증명하며 살아간다. SNS를 통해 나를 설명하고, 이메일과 회의로 생각을 전달하며, 질문과 대답 속에서 자아를 구성한다. 하지만 말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때때로 진짜 나의 감정과 욕구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첫 번째 전략은 의도적인 침묵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말을 멈추는 시간을 가져보자. 조용한 공간에서 음악 없이, 휴대폰 없이, 나의 내면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느껴지는 불편함과 허전함은, 실제로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 상태’에 익숙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지나면, 조금씩 나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두 번째는 비언어적 감각을 강화하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향기를 기록하거나, 온몸으로 걷는 산책 같은 활동은 언어 이전의 감각을 회복하는 방법이 된다. 특히 시각, 청각, 촉각을 섬세하게 인식하는 훈련은 자존감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키냐르는 이런 감각의 영역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관계 맺기다. 때로는 말보다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더 많은 감정을 전한다. 우리는 말로만 연결된 관계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 침묵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존재를 존중해 주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연대다.


마무리 감상

《은밀한 생》은 작고 조용하지만, 읽는 이의 마음에 묵직한 파장을 남긴다. 이 책은 거대한 서사도,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지만, 말로는 포착되지 않는 삶의 본질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인간은 언어로 존재를 증명하지만, 동시에 언어로부터 해방되어야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키냐르의 문장은 속삭임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엔 삶의 깊은 사유가 숨 쉬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 순간 말을 멈추고 고요를 찾고 싶은 충동이 든다. 내 안의 은밀한 감각, 아무에게도 설명되지 않았던 감정, 말하기보다 그냥 ‘존재하기’를 택하고 싶었던 그 순간들. 《은밀한 생》은 그 조용한 순간들이 사실은 가장 진실한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당신의 삶에도 말로 설명되지 않는 조용한 생이 있다면, 이 책은 그 삶에 귀 기울이는 가장 깊은 문학적 초대가 될 것이다.

 

숨겨진 명작 리뷰 | 《보랏빛 돛단배》 – 알렉산드르 그린

 

숨겨진 명작 리뷰 | 《보랏빛 돛단배》 – 알렉산드르 그린

《보랏빛 돛단배》 – 알렉산드르 그린- 믿음의 끝에서 기적은 현실이 된다 - 줄거리 요약《보랏빛 돛단배》는 러시아의 작은 항구 마을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아쏘르는 가난한 어부 

soyong-soyong.com

숨겨진 명작 리뷰 |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숨겨진 명작 리뷰 |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사랑할 수 없는 아이와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줄거리 요약《다섯째 아이》는 1960~7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해리엇과 데이

soyong-soyong.com

 

숨겨진 명작 리뷰 | 《방랑자들》 – 올가 토카르추크

 

숨겨진 명작 리뷰 | 《방랑자들》 – 올가 토카르추크

숨겨진 명작 리뷰 | 《방랑자들》 – 올가 토카르추크-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흘러 다니는 것이다-줄거리 요약《방랑자들》은 전통적인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

soyong-soyong.com

 

숨겨진 명작 리뷰 | 《사랑의 역사》 – 니콜 크라우스

 

숨겨진 명작 리뷰 | 《사랑의 역사》 –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 니콜 크라우스- 상실 위에 피어난 기억의 조각들, 그리고 그 이름 없는 사랑의 진실 -줄거리 요약《사랑의 역사》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 교차 서술을 통해 자신만의 

soyong-soyong.com

 

숨겨진 명작 리뷰 |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숨겨진 명작 리뷰 |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 도시는 인간의 마음을 닮는다, 혹은 반대로 -줄거리 요약《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줄거리보다는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마르코 폴로가

soyong-so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