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0 고전명작 :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 리뷰 제국의 종언을 품은 마지막 행진- 요제프 로트 『라데츠키 행진곡』 리뷰 -도입부|쇠락을 걷는 발걸음, 그것마저 아름다운『라데츠키 행진곡』은 요제프 로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빛과 그림자를 그린 대작이다. 1918년, 합스부르크 왕조의 몰락은 단순한 한 나라의 해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유럽 질서와 문명의 붕괴였으며,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 가치, 삶의 방식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요제프 로트는 이 거대한 역사의 균열을, 단지 영웅적인 장군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작은 귀족 가문인 트로타 가문의 삼대를 통해, 개인의 미세한 감정, 충성, 망설임, 그리고 필연적인 몰락을 촘촘하게 길어올린다. 이 소설은 읽는 이를 깊은 향수와 비애로 이끈다... 2025. 4. 27. 고전명작 : 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 리뷰 삶이라는 무대 위, 진짜 나를 찾아서- 윌리엄 골딩 「피라미드」 리뷰 -도입부|무대 위에서는 누구나 진짜 얼굴을 숨긴다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는 한 인간의 인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집요하고 섬세하게 추적하는 작품이다. 보통의 성장소설들이 외부 세계의 모험과 발견을 통해 주인공을 변화시키는 데 반해, 『피라미드』는 거꾸로 작동한다. 변화는 없다. 대신,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꿈과 타협하는 자아, 그리고 쌓여가는 위선과 자기기만이 있다. 이 소설은 영국의 조그만 중산층 마을을 무대로 삼는다. 그곳은 무력하지만 끈질긴 관습이 지배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평가하며 무의식적으로 억압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요한 배경이야말로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전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올 올.. 2025. 4. 26. 욕망의 시대, 사물의 시대, 책 「사물들 」 리뷰 욕망의 시대, 사물의 시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 -도입부|소유의 꿈은 어떻게 우리를 잠식하는가?『사물들』은 제목부터 낯설다. ‘사람’이 아닌 ‘사물’에 관한 이야기라니.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순간, 이 소설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정조준한 문학적 해부도임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욕망, 소비, 계급, 불안정함이라는 현대 사회의 구조를 ‘사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사회적 알레고리다. 페렉은 물건을 탐닉하는 1960년대 프랑스의 젊은 중산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실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비중독형 인간상’의 원형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불쑥불쑥 오늘날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겹쳐진다. 더 비싼 커피, 더 근사한 여행지, 더 트렌디.. 2025. 4. 24. 마이클 온다체의 「고양이의 식사」 리뷰 어린 시설의 항해, 삶의 진실을 만나는 시간- 마이클 온다체의 「고양이의 식사」 리뷰 -도입부|인생의 항해는 때때로, 고양이의 식사처럼 조용히 시작된다마이클 온다체는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잘 알려진 작가다. 그러나 그가 남긴 또 하나의 걸작, 『고양이의 식사』는 더 은밀하고, 더 부드럽고, 더 사적인 공간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이 소설은 한 소년의 항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성장의 이야기지만, 단순한 유년기 회고록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시간, 인간과 세계, 진실과 침묵에 관한 문학적 탐험이다. 제목이 주는 인상처럼, 이 소설은 격렬하지 않다. 대신 아주 조용하고 섬세한 문장들로 세계의 작은 균열들을 드러낸다. 소년의 눈에 비친 세계는 어딘가 불안정하지만 그 안엔 매혹과 모험이 공존한다. 마치, 저녁 .. 2025. 4. 23. 고전명작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 리뷰 지식의 바벨탑은 왜 무너졌는가?- 플로베르 『부바르와 페퀴셰』 리뷰 -도입부|지식에 탐닉한 두 남자, 우스꽝스러운 우리의 자화상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는 미완성 유작이지만, 오히려 그 미완의 형식 자체가 완벽한 풍자로 기능한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산업화와 과학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폭주하던 시대. 그 속에서 두 평범한 필경사, 부바르와 페퀴셰는 뜻밖의 유산을 물려받고 은퇴 후 자신만의 ‘지적 르네상스’를 시도한다. 그들은 농업부터 철학, 교육, 연금술, 해부학까지 거의 모든 지식 체계를 차례로 섭렵하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늘 실패다. 이 소설은 현대에도 유효한 지식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던진다. 우리는 진보라 믿는 모든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백과사전적 지식이 정말 우리를 자유롭.. 2025. 4. 22. 문명은 과연 축복인가?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 리뷰 문명은 과연 축복인가?-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 리뷰 -도입부|야생과 문명의 경계에서 인간을 다시 묻다대부분의 독자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가 쓴 고전 『로빈슨 크루소』는 조난 당한 한 남자가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이자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이 고전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쓴다.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은 단순한 생존기가 아니라, 문명과 야생, 질서와 자유, 인간과 자연의 대립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디포의 이야기 구조를 따르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다. 투르니에는 주인공 로빈슨의 시선을 따라 문명의 질서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제한하.. 2025. 4. 20.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