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시대, 사물의 시대
-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 -
도입부|소유의 꿈은 어떻게 우리를 잠식하는가?
『사물들』은 제목부터 낯설다. ‘사람’이 아닌 ‘사물’에 관한 이야기라니.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순간, 이 소설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정조준한 문학적 해부도임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욕망, 소비, 계급, 불안정함이라는 현대 사회의 구조를 ‘사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사회적 알레고리다.
페렉은 물건을 탐닉하는 1960년대 프랑스의 젊은 중산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실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비중독형 인간상’의 원형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불쑥불쑥 오늘날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겹쳐진다. 더 비싼 커피, 더 근사한 여행지, 더 트렌디한 옷. 소유가 곧 존재가 된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페렉은 그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 안에 ‘물건으로 채워진 텅 빈 충동’을 조용히, 하지만 무섭도록 집요하게 드러낸다.
줄거리 요약|사물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
이야기는 주인공 제롬과 실비라는 연인이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특별히 재산이 많은 것도, 명망 있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감각적이고 세련된 삶을 갈망한다. “가죽 소파, 광택 있는 티크나무 책상, 헝가리산 융단, 무광 유리로 된 촛대” — 그들은 이런 사물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은 광고업계와 사회조사 일을 전전하며 먹고살지만, 삶은 끊임없이 사물에 대한 결핍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실제 삶보다 더 많이 사는 것은 **‘꿈꾸는 삶’**이다. 자신들의 현실은 늘 계획 뒤편에 있고, 소비할 수 없는 순간은 무의미하다.
결국 이들은 모든 것을 리셋하듯 튀니지로 도피하지만, 그곳에서도 변화는 없다. 꿈꾸는 것과 실현하는 것의 간극은 여전하다. 소설 말미에서 두 사람은 돌아와 다시 원점에서 방황을 시작한다. 사물로 채워지길 원했지만, 정작 비어 있는 삶. 페렉은 이를 **‘소유에 중독된 존재의 역설’**로 형상화한다.
실생활 적용 전략|‘사물들’ 없는 삶을 상상해볼 용기
『사물들』은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자, 자기 성찰의 도구다. 오늘날 우리 삶은 더욱 물건 중심적이다. 이제는 손에 쥐고 있지 않아도, 앱과 이미지로 소유의 욕망을 무한 재생산한다. 이 작품이 말하는 사물은 더 이상 ‘티크 책상’이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 팔로워 수, 감성 캠핑 용품, AI 프롬프트, 마일리지 적립 같은 형체 없는 사물들이다.
사물보다 관계에 투자하라
실비와 제롬은 관계보다 ‘삶의 분위기’를 택했다. 하지만 물건이 남긴 것은 따뜻한 기억이 아니라, 반복되는 결핍이었다. ‘소유의 꿈’은 늘 제자리에 머무르며, 결국 삶을 누릴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감정과 연결이다.
소유의 언어를 해체하라
‘내 것이니까 좋다’는 말을 의심해보자. 갖고 있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것, 물건 없이도 풍요로운 순간은 생각보다 많다. 이 책은 물건 중심의 세계관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 결국 가장 혁신적인 실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욕망의 출처를 점검하라
내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 정말 나의 욕망일까? 아니면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피드를 따라가다 흡수된 타인의 욕망일까? 『사물들』은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인상 깊은 구절 및 해석|사물은 거울이 된다
“그들은 사물들 속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물들은 그들을 원하지 않았다.”
이 문장은 페렉식 냉소와 풍자가 집약된 구절이다. 마치 사물이 살아 있는 듯 묘사되며, 인간이 사물에 소외되는 기묘한 역전 현상을 보여준다. 이 말 속엔 인간의 존재감이 사물에 종속된 현대인의 비극이 담겨 있다. 소유하고자 할수록 소외되고, 사물 속에서 존재를 찾고자 할수록 사라지는 아이러니.
“삶은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늘 한 발짝 앞에서 웃으며 도망쳤다.”
이 대사는 소유의 허상을 추격하는 자들의 본질을 꿰뚫는다. 삶이란 실체가 아니라, 허상을 좇는 과정 자체가 삶이 되어버린 시대의 초상. 욕망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으며, 그 충족되지 않음이 곧 ‘현대성’이다.
“그들은 가난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욕망하지 않는 자신이었다.”
이는 『사물들』의 중심 테마 중 하나인 욕망의 중독성을 드러낸다. 더 이상 욕망할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사물이 없으면 불완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 속의 공허를 페렉은 냉정하게 묘사한다. 소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무리|사물들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사물들』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페렉의 정교한 묘사와 반복되는 묘사는 마치 광고 카탈로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의도된 것이다. 이 작품은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욕망의 주인은 정말 ‘나’인가?
이 소설이 도달한 지점은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욕망의 구조를 이해한 다음, 그 위를 걸어가는 법을 제안한다. 사물 없이 사는 삶은 어렵다. 그러나 사물에 의해 사는 삶을 의심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것이 이 책의 도발적인 질문이자 문학의 힘이다.
오늘도 우리는 물건 사이를 떠돈다. 그러나 문득, 그 사물들 위에 조르주 페렉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건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무언은 당신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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