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바벨탑은 왜 무너졌는가?
- 플로베르 『부바르와 페퀴셰』 리뷰 -
도입부|지식에 탐닉한 두 남자, 우스꽝스러운 우리의 자화상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는 미완성 유작이지만, 오히려 그 미완의 형식 자체가 완벽한 풍자로 기능한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산업화와 과학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폭주하던 시대. 그 속에서 두 평범한 필경사, 부바르와 페퀴셰는 뜻밖의 유산을 물려받고 은퇴 후 자신만의 ‘지적 르네상스’를 시도한다. 그들은 농업부터 철학, 교육, 연금술, 해부학까지 거의 모든 지식 체계를 차례로 섭렵하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늘 실패다.
이 소설은 현대에도 유효한 지식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던진다. 우리는 진보라 믿는 모든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백과사전적 지식이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까? 혹은 더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않는가? 플로베르는 방대한 지식 체계의 허약한 기반을 조롱하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의 슬픔도 담아낸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책이다. 두 사람의 시행착오는 우리 자신의 삶, 특히 정보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순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들의 실패는 곧 우리의 실패다.
줄거리 요약|지식이라는 미로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부바르와 페퀴셰는 파리의 필경사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난다. 서로의 성격이 기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곧 친구가 된 그들은, 한 명이 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함께 파리를 떠나 시골에서 지적인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그들은 시간을 투자해 농업, 원예, 화학, 의학, 심리학, 정치, 교육, 심지어 요리까지 모든 것을 책으로 배워 실험한다.
하지만 이들의 지적 탐험은 끝없이 실패로 귀결된다. 씨앗은 싹트지 않고, 해부 실험은 역겨움으로 중단되며, 철학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정치적 토론은 논쟁으로 끝나고, 교육 실험은 아이들의 반항으로 좌절된다.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지식을 쌓지만, 그만큼 현실에서 멀어지고, 삶은 복잡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결국 이들은 모든 실천적 시도를 포기하고, 다시 자신들이 처음 일하던 필경사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번엔 책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어리석음을 모은 ‘바보 사전’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단순한 개인적 좌절이 아닌, 시대적 증후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플로베르가 말하는 ‘지식의 야만화’다.
인상 깊은 구절 및 해석|알면 알수록 멀어지는 진리
“그들은 실수할 때마다 다시 책을 찾았고, 책은 늘 서로를 반박하고 있었다.”
이 문장은 ‘정보의 진실성’에 대한 플로베르의 회의적 시선을 명확히 보여준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어떤 실패를 겪으면 책을 찾는다. 그러나 그 책들은 서로를 부정하거나 모순된다. 이는 지식 체계의 상대성과 불완전함, 그리고 그것에 의존하는 인간의 무기력을 풍자한다. 현대 사회의 ‘논문 만능주의’, ‘유튜브 지식인’ 현상과도 놀랍도록 유사하다.
“어쩌면 인류는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가 가장 행복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 대사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함축한다.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모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아는 척하는 상태가 인간을 가장 맹목적으로 만든다는 통찰이다. 플로베르는 지식 자체보다, 그것을 소유하려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두 주인공의 비극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된다.
실생활 적용 전략|정보 과잉 시대의 부바르와 페퀴셰 되지 않기
플로베르의 이 고전은 단지 웃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가 넘치는 21세기 디지털 사회에 중요한 경고를 담고 있다. 우리는 부바르와 페퀴셰처럼 하루에도 수십 개의 콘텐츠를 보고, 수많은 지식을 소비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실제로 ‘살게’ 만드는가?
지식은 정복 대상이 아니다
책, 논문, 영상으로 쌓인 정보는 필요하지만, 삶과의 연결이 없다면 공허해진다. 지식을 위한 지식, 정보의 소비를 위한 소비는 결국 지식의 피로와 환멸을 낳는다. 중요한 건 배운 것을 실천하고, 삶에 녹여내는 과정이다.
통합적 사고를 연습하라
부바르와 페퀴셰는 각각의 지식을 ‘분절된 진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체를 조망하지 못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단편 정보는 넘치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힘, 즉 해석력과 통합적 사고는 부족하다. 오늘 읽은 정보 하나를 삶의 맥락 안에서 위치 지워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실패와 무지를 받아들이는 용기
지식은 오히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두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실패를 반복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질문이 생기고, 탐구가 시작된다.
마무리|지식의 피로, 그리고 삶의 진실
『부바르와 페퀴셰』는 현대인이 겪는 지식 피로, 정보의 혼란, 그리고 학습의 환상까지 미리 경고해주는 예언서 같은 책이다. 플로베르는 이 소설을 통해 계몽주의적 지식 낙관주의를 조롱하면서, 진정한 사유의 길은 책이 아닌 삶의 경험과 성찰에 있음을 암시한다.
오늘날 우리는 부바르와 페퀴셰보다 훨씬 많은 지식에 접근할 수 있지만, 과연 그만큼 똑똑해졌는가?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더 피로하며, 더 외롭지는 않은가?
이 책은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지식을 베끼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을 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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