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과연 축복인가?
-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 리뷰 -
도입부|야생과 문명의 경계에서 인간을 다시 묻다
대부분의 독자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가 쓴 고전 『로빈슨 크루소』는 조난 당한 한 남자가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이자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이 고전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쓴다.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은 단순한 생존기가 아니라, 문명과 야생, 질서와 자유, 인간과 자연의 대립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디포의 이야기 구조를 따르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다. 투르니에는 주인공 로빈슨의 시선을 따라 문명의 질서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조명한다. 그는 ‘야생’의 삶이야말로 오히려 더 근원적인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책은 고립된 공간, 무인도라는 설정 안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 타자와의 관계, 자연과 문명의 의미를 끝까지 탐구한다.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 “문명이 과연 축복인가?”라는 물음을 정면으로 던지는 철학적 소설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단순하지 않다.
줄거리 요약|무인도에서 시작된 재문명의 여정
1719년, 영국의 청년 로빈슨은 무역 여행 도중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되고, 외딴 무인도에 홀로 표류하게 된다. 그의 첫 반응은 놀라움과 공포지만, 곧 문명인으로서의 질서를 세우기 시작한다. 그는 섬에다 자신의 이름을 딴 ‘스페란차’라는 지명을 붙이고, 땅을 정리하며 집과 창고를 짓고, 자기가 구한 물건들을 분류하고 관리한다. 섬을 일종의 작은 유럽처럼 만든다.
그러나 그 섬은 그가 아무리 계획하고 조직해도,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자연은 예측 불가능하고, 혼자서는 문명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된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로빈슨은 섬의 다른 쪽 해변에서 한 원주민 소년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인간 제물로 바쳐질 뻔한 그를 구출하고, 이름을 붙여준다 — ‘방드르디(Vendredi, 금요일)’. 바로 디포의 소설에서 ‘프라이데이’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투르니에의 방드르디는 단순한 하인이 아니다. 그는 로빈슨이 만든 질서와 규율에 순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새로운 감각과 자유의 리듬을 가져온다. 로빈슨은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점차 그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세운 질서가 얼마나 인위적이고 폭력적인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국 문명의 환상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거듭난다.
이 책은 단순한 생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자와 관계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존재의 깊이를 새롭게 발견해가는 변화의 여정이다.
인상 깊은 구절 및 해석|문명의 질서를 넘어 자유의 리듬으로
“나는 질서와 통제를 통해 살아남았지만, 그 질서가 나를 살아있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 문장은 책의 핵심을 꿰뚫는다. 로빈슨은 무인도에서 문명을 재현하려 애쓰며,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자유를 잃고,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한 채 고립된다. 투르니에는 ‘살아남는다’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의 차이를 이 문장을 통해 보여준다. 생존이 인간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방드르디는 나의 세계를 뒤엎었다. 그로 인해 나는 다시 태어났다.”
처음 방드르디는 로빈슨에게 혼돈이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로빈슨이 만든 세계의 허약함을 드러냈고, 마침내 그 질서를 해체하게 만든다. 이 구절은 타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나의 자아를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타자를 통해 나를 해체하고, 다시 만든다. 투르니에는 이 관계를 문명 vs 야만이 아닌, 상호 변형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실생활 적용 전략|오늘의 세계에서 ‘방드르디’로 산다는 것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은 단지 18세기 풍의 철학적 소설이 아니다. 현대인의 삶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질서와 규범 속에 길들여져 있다. 출퇴근 시간, 생산성, 소셜 미디어, 소비 문화 — 이 모든 것은 일종의 문명적 구조이며, 동시에 우리를 어느 정도는 무인도에 가둔 감옥이기도 하다.
1. 통제의 강박을 내려놓는 연습
우리는 무엇이든 계획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책은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완벽한 플래너보다, 하루의 ‘틈’을 허용하는 감각이 더 필요하다.
2.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를 성찰하기
방드르디는 로빈슨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인간답게 만든다. 지금 나의 주변에도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세계관이 존재한다. 그들과의 관계가 때로는 나를 다시 세운다.
3. 비생산적인 삶의 가치 찾기
책은 ‘야생’을 단순히 비문명적 삶이 아니라, 보다 유기적이고 존재 중심적인 삶으로 그린다.
쉼, 느림, 놀이, 감각의 회복 — 이 모든 것이 다시 생각되어야 할 가치다.
4.자연과의 관계 회복하기
투르니에의 무인도는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기후 위기 시대에, 이 메시지는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일부로서 살아가야 한다.
마무리|무인도는 결국, 우리 안에 있었다
『방드르디, 혹은 야생의 삶』은 로빈슨이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이지만, 실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내면의 ‘섬’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존재하며, 타자의 등장 없이는 변화할 수 없다. 방드르디는 단지 로빈슨의 하인이 아니다. 그는 로빈슨을 해체시키고, 다시 구성시킨 존재다.
투르니에는 독자에게 말한다. “당신의 삶에도 방드르디가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그것은 불편하고 낯설고 심지어 위협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삶을 삶답게 만드는 변화의 신호다. 이 책은 문명화된 삶의 안락함을 내려놓고, 야생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오늘, 당신은 로빈슨인가, 방드르디인가?
혹은 아직 당신 안의 방드르디를 만나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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