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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리뷰 : 고전명작 ㅣ 후안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의 규칙』 리뷰

by 50분전 발행됨 2025. 4. 18.

사랑은 끝났지만, 부재는 여전히 쓰고 있다

- 후안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의 규칙』 리뷰 -


책 리뷰 : 고전명작 ㅣ 후안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의 규칙』 리뷰


도입부|사랑이 언어로 남을 때, 그 문장은 얼마나 깊어지는가

사랑은 종종 너무 가까이 있어 그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감정이다. 우리는 사랑을 말하고, 노래하고, 쓰지만 정작 사랑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후안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의 규칙』은 그런 설명 불가능한 감정의 자리에 문장을 놓는다. 그것은 분노도, 그리움도, 회한도 아닌 어딘가 모호한 감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잔재로 이루어진 책이다. 이 잔재는 살아 있는 과거이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체온이며, 글로 남은 감정의 부스러기다.

세풀베다는 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질문들을 던진다.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때 우리가 느낀 것은 진짜였을까?", "지금은 왜 이렇게 말이 늦었을까?" 이 책은 문장으로 써진 편지이자, 기억의 잔해 위에 쌓인 부재의 언어다. 바로 그 언어가 이 책을 고독한 연애편지 이상의 무언가로 만든다. 그는 쓰고 있고, 독자는 읽고 있으며,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장은 그녀를 향해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의 규칙’을 배운다. 사랑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의 법칙을.

 



줄거리 요약|편지로 남겨진 연애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얼굴

『연애의 규칙』은 연대기적 서사로 흘러가지 않는다. 한 남자가 한 여인을 향해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단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단면은 과거의 기억에서 현재의 통찰로 이어지고, 때로는 그녀의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는 방식으로 지속된다. 이 책에는 정확한 시간 순서도, 사건의 연속도 없다. 대신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에 분화된 감정의 층위를 목격한다. 그 감정은 사랑의 기쁨, 연인의 몸짓, 함께 웃던 음악, 사소한 말다툼, 그리고 결국은 떠난 자의 흔적에 대한 기록으로 구성된다.

이 편지 속 남자는 그녀를 떠나보낸 상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의 기억 안에서 거주한다. 세풀베다는 말한다. “네가 없는 세계는 여전히 너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이 문장은 상실 이후에도 결코 완전히 끝나지 않는 관계의 밀도를 보여준다. 사랑은 존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부재의 지속이라는 형식으로도 살아남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애’의 이미지가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지 느끼게 된다. 세풀베다는 연애를 단순히 감정적 교류로 보지 않는다. 그는 연애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 즉 갈망, 결핍, 기억, 그리고 표현의 욕망에 다가간다. 그렇기에 이 편지는 그녀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향한 문답이다. 연애가 끝난 뒤에도 그 안에 남아 있는 자신의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 이것이 『연애의 규칙』이 던지는 가장 내밀하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인상 깊은 구절 및 해석|사랑은 침묵 위에 남겨진 문장의 형태로 존재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저지르는 수많은 잘못들은, 대부분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된다.”

이 문장은 세풀베다 특유의 서정성과 인간 이해가 압축된 핵심이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많은 말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말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 ‘침묵’은 때로는 방어기제이며, 때로는 공포이자 회피이다. 그러나 세풀베다는 그것을 사랑의 흔적 중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침묵은 감정이 언어로 전환되지 못한 채 내면에 고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침묵은 결국 말로 표현되지 못한 사랑의 실패로 드러난다.

“나는 여전히 너에게 말을 건다. 너는 없지만, 너의 부재만이 나를 쓰게 만든다.”

이 구절은 단지 낭만적인 회상을 넘어선다. ‘없는 자에게 말을 건다’는 행위는 부재 속 존재를 확인하는 시도다. 이 문장은 연애의 미학이 현재의 공유가 아닌, 부재의 구성으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그녀가 없기에, 그는 계속해서 써야만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의 모든 문장은 일종의 부재에 대한 반항이자, 자기 확장의 몸부림이다. 그는 그녀에게 말하는 동시에,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잊고 있습니까?”

 



마무리|사랑은 끝나도, 그 언어는 인간을 계속 쓰게 만든다

『연애의 규칙』은 단순히 사랑을 노래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묘사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너무도 깊고, 때로는 아프다. 세풀베다는 연애를 다루지만, 그 연애는 시간 속에서 해체되고 재조립되며, 인간 내면의 철학적 질문으로 변환된다. “왜 우리는 누군가를 갈망하고, 그 갈망은 왜 실패로 귀결되는가?”라는 질문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물음이다.

또한 이 책은 ‘사랑의 언어’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인간은 감정을 언어로 포착하려 하지만, 언어는 늘 감정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랑을 붙잡으려 하고, 기억을 되살리고, 상실의 빈자리를 메우려 한다. 이 책은 그 언어의 반복 속에서 결국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되묻는다. 세풀베다가 묘사하는 사랑은 하나의 창조 행위이며, 동시에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연애는 사적인 일이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는 언제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철학적이다. 세풀베다는 바로 그 사실을 환기시킨다. 사랑은 나의 일이자, 시대의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감정으로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에로스를 품고 있는 존재다. 『연애의 규칙』은 그 에로스를, 그 창조의 갈망을, 그 부서진 언어 위에 다시 쌓아 올린 하나의 정의로운 감정의 책이다.